작가노트 &비평

회화 공간으로 소환된 매체적 감각 혹은 지각에 대하여 

나선미 작가의 작업에는 영상 이미지 혹은 프로젝션된 영상의 프레임들이 등장한다. 작가는 마치 실내 풍경을 그려내듯이 특정한 공간과 함께 그곳에 투사된 영상이미지들을 캔바스 위에 그려낸다. 그려낸 결과물은 물론 현실의 공간에서의 풍경과는 차이가 있다. 현실 공간은 태양과 같은 자연 광선이나 조명과 같은 광원이 사물에 반사된 빛에 의해 구성된 세계의 풍경이다. 그러나 나선미 작가가 그려내고 있는 공간은 현실 공간 뿐만 아니라 함께 그곳에 영상 매체에 의해 저장되어 기록되었다가 실행시켜 투사된 이미지들을 포함하고 있다. 여기에 포함된 영상 이미지들 역시 영상 매체에 저장될 때에는 사물들이 일정한 광원들과의 관계에서 만들어진 빛을 저장한 것들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프로젝터에 의해 투사될 때에는 그곳에 그 사물이 시간적으로 그리고 공간적으로 존재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 특정한 사물을 지시하게 되며 동시에 특정한 감각이나 기억 등을 환기시키게 된다. 작가는 이 바로 지점에 주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바꿔 말하면 현실에 대한 감각과 영상 등 매개체가 개입한 감각의 경계 지점에서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의 위치를 의미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현대인들은 직접 몸으로 체험하고 감각하는 현실보다는 여러 가지 매체에 의해 매개된 정보들로부터 간접적으로 체험하는 경우가 더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나선미 작가의 작업은 이렇게 직접적인 현실의 감각과 매체적으로 수용된 간접적인 감각이 융합된 이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과 현대사회의 상황을 드러내 보여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현대의 첨단 매체로 과거의 감각방식을 수용하는 이른바 재매개로 지칭되고 있는 방식이 아니라 현대의 영상 이미지 매체를 회화라는 과거의 감각 방식으로 환원시키는 역방향의 재매개를 시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캔바스에 들어온 영상매체에서의 가상적 풍경들은 현실공간을 재현하는 회화로 옮겨지면서 재해석을 요구하는 위치로 전환되어 버린다. 가상의 비물질적 정보들이 투사된 벽면들은 유화물감과 같은 물질로서 회화 공간에 고착된다. 영상 매체에 의해 프로젝션된 풍경은 회화적 대상으로서의 풍경 즉 작가가 바라보고 있는 현실과 섞여서 회화로 다시 태어난다. 기록된 정보로서 매개된 영상은 눈으로 직접 본 현실과 동등하게 한 화면 안에서 혼합되거나 병치되어 위치하게 된 것이다. 영상과 같은 비물질적 매체에 의해 매개된 현실은 본질적으로 현실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현실로 착각하게 만들고 몰입하게 만든다. 그러나 그와 반대로 나선미 작가의 회화 작업에서는 유화 물감이라는 물질을 직시하면서 영상 정보와 현실이 혼합된 현장을 경험하게 된다. 이 경우에는 착각과 몰입이 일어나기 보다는 그 이미지들이 현실이 아님을 각성하는 효과가 나타나게 된다. 다시 말해 풍경을 바라보는 주체와 대상의 객체 사이의 시선의 거리가 소멸되면서 몰입하게 되었던 상황이 역전되어 눈에 보이는 물질을 확인 할 수 있는 관조적 고찰이 가능한 시선의 거리가 노출되게 된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나선미 작가의 작업은 현실과 비현실의 간극과 차이를 각성하게 되는 순간을 드러내 보여주고 있는 것이며 현대 사회의 매체적 상황을 인식하게 만들고 있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즉 작가는 특정한 이미지나 풍경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아니라 현대의 매체적 상황을 그려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현대인들은 직접 사물을 경험하고 감각하기 보다는 다양한 매체들에 의존하고 있고 그 의존도는 더욱 확대되어 가고 있다. 이제는 인간의 감각과 지식뿐만 아니라 욕망과 잠재의식까지 종속시키는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상황에서 나선미 작가의 작업은 현대인들이 살고 있는 매체의 지평과 그 위치를 다시 거리를 두고 바라보게 만든다. 광원과 사물이 관계하여 드러난 빛으로부터의 현실과 영상 정보가 만들어낸 투사된 빛의 가상적 실제 사이에서 그 경계를 명확히 볼 수 있도록 만들고 있다. 결국 나선미 작가의 작업은 첨단 영상 매체에 매개된 정보에 몰입된 현대인의 감각에게 과연 현실이 무엇인가에 대해 질문하면서 시간과 공간의 레이어를 그대로 펼쳐 보여줌으로써 그 답을 찾아 갈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대화하고자 하는 것으로 보인다. 작가는 그러한 사유와 대화가 가능한 거리를 만들어내기 위한 공간을 구축해내고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가 그려낸 레이어들에서는 그 간극으로부터의 사이 공간이 드러나 있다. 이에 그의 작업을 보는 이들이 만약 이 간극 사이를 주목하고 그 사이에서 사유하기를 시작한다면 어쩌면 작가가 질문하기 시작한 대화에 참여하게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이미술연구소 이승훈